★ 백련정사(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산내암자이다. 1374년(공민왕 23)에 월화(月華)가 창건하였으며 그 뒤 260여년이 지난 1634년(인조 12)현암(懸巖)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지금의 건물이 중건 당시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고색이 창연한 것으로 보아 중수를 거듭하였을 뿐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건물은 6동 56칸이며, 법당의 현판은 ‘白蓮舍(백련사)’로 되어 있다.
이는 부처님 당시의 죽림정사(竹林精舍)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절은 조선시대 이후부터 대표적인 선원(禪院)의 하나가 되었고, 선객이라고 하면 누구나 한 철씩 지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선풍(禪風)으로 이름났다.
백련암 [白蓮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옥련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인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백련암에서 동쪽으로 약500m 떨어진 나즈막한 언덕 위에 있다. 1374년(고려 공민왕 23)에 쌍옥대사(雙玉大師)가 창건하였으며, 1857년(철종 8)에 호곡(虎谷), 청진(淸眞) 두 승려가 중건하였다. 절 주위는 지세가 평탄하며 북쪽으로는 멀리 선자봉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인 ‘큰 빛의 집’, 무량수전, 요사채, 식당, 청소년회관 등이 있다. 큰 빛의 집에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1,250 아라한 등이 봉안되어 있다.
옛날 이 암자에는 ‘장군수(將軍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물을 마시는 옥련암의 승려들은 힘이 굉장히 세어서 큰 절의 승려들이 당해내지 못했다. 어느 날 큰 절의 승려들이 몰래 장군수 우물을 메우고 그 물길을 딴 곳으로 돌리자, 그 뒤로는 옥련암에 힘센 승려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오늘날에도 절 안에 ‘장군수’라고 부르는 약수터가 있으며, 물맛이 좋아 찾는 이들이 많다.
통도사 옥련암 [通度寺玉蓮庵] (두산백과)
★서운암
서운암은 통도사 암자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특히 봄을 알리는 들꽃축제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서운암은 단지 대중적인 암자만은 아니다. 서운암에 관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이미 고려 충목왕 2년(1346) 충현(沖絢) 대사가 창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깊은 유서를 가진 암자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암자 모습은 1985년 성파 스님이 감원으로 암자를 이끌면서 중건한 것이다. 해마다 아름다운 들꽃을 즐길 수 있는 서운암은 성파 스님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사라져가는 옛것을 현대에 되살리려는 마음에서 비롯한 스님의 열정은 비단 들꽃뿐만 아니라 오늘날 서운암을 사람들에게 알린 약된장, 천연염색, 십육만도자대장경 그리고 옻칠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함께 사람들과 성과를 나누고 있다.
★ 취운암
통도사에 속한 19곳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통도사 보타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통도사의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1650년(효종 원년)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창건하였고 1795년(정조 19)에 낙운대사(洛雲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9년 태일화상(泰日和尙)이 다시 고쳐 지었다. 총 6동 128칸에 이르는 건물로 통도사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자이다. 근래까지 취운암 법당 뒤쪽에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즐비하게 서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과거에도 역대 고승들이 많이 주석하였던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부도들은 모두 통도사 부도전으로 이전되었다. 사찰 내에는 문화재 자료 364호로 지정된 '지장시왕탱'이 소장되어 있다.
통도사 취운암 [通度寺翠雲庵] (두산백과)
★보타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 하나이다. 통도사 암자 중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며, 통도사 매표소를 지나 왼쪽으로 300m 정도 가다 보면 있다. 창건에 관하여 2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1927년 승려 영춘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와 비구니인 재덕과 호전이 원동의 토굴로부터 옮겨지은 절로 정운과 호전이 증축하였다는 이야기이다.
경내에는 법당과 약사전, 요사채 2동, 식당, 창고 등이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주위로는 담장이 둘러져 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건물 정면에는 일제강점기에 통도사의 주지를 지낸 승려 구하가 쓴 ‘보타암(寶陀庵)’ 현판이 걸려 있다. 약사전에는 약사보살과 산신, 나반존자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절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입구에서 법당에 이르는 길에는 걷는 이들을 배려한 박석(薄石)이 놓여 있다. 통도사 보타암 [通度寺寶陀庵] (두산백과)
★ 순례의 마지막 통도사 본사
한국 3대 사찰의 하나로,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한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라 한 것은,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此山之形通於印度靈鷲山形),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戒壇)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爲僧者通而度之),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道)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 유래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法式)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한 데서 비롯된다. 이때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득도케 하였다.
이렇게 창건된 이 절은 이후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僧團)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중심인 금강계단은 자장과 선덕여왕이 축조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한 이후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경내의 건물들은 대웅전과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비롯하여 영산전(靈山殿)·극락보전(極樂寶殿) 외에 12개의 법당과 보광전(普光殿)·감로당(甘露堂) 외에 6방(房), 그리고 비각(碑閣)·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일주문(一柱門)·범종각(梵鐘閣) 등 65동 580여 칸에 달하는 대규모이다.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과 41년(인조 19)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세의 건물들이다.
이 사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이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보물 제334호인 은입사동제향로(銀入絲銅製香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奉鉢塔)이 있고,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소속 암자로는 선원(禪院)인 극락암을 비롯하여 백운암·비로암 등 13개의 암자가 있다. 통도사 [通度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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